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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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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무령왕릉 출현하나…공주 송산리서 확인된 46기 고분의 실체 “‘중방(中方)’ 명 벽돌의 원 위치를 찾아라.”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 및 6호분과 같은 성격의 벽돌무덤을 포함, 새로운 백제고분 41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등재) 중 한 곳인 송산리 고분군의 중장기 학술조사 수립을 위한 첫 정밀현황조사 결과 무령왕릉 인근에서 ‘중방(中方)’ 명 벽돌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무령왕릉 남쪽 80m 지점의 지표면에서 ‘중방’ 명 벽돌을 수습했다”면서 “이 벽돌은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파괴벽돌무덤(17호분)의 추정위치와도 70m 정도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무령왕릉 서벽 창문모양 장식에 사용된 ‘중방(中方)’명 벽돌(좌)과 이번 조사에서 수습한 ‘중..
'정선, 김홍도…' 화가적 시선으로 본 조선의 실경산수화 특별전 실경산수화는 실재하는 경치, 즉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폭넓게 칭하는 일반적인 표현. 고려시대 이녕의 와, 작자미상의 , 등이 있다. 조선중기 한강가 독서당에서 열린 계회장면을 그린 (보물 제 867호)와 곡운 김수증(1624~1701)이 강원도 화천의 승경지를 선정해서 사인화가(士人畵家) 조세걸(1636~?)에게 그리게 한 (1682년)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는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됐다. 겸재 정선의 . 1711년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제작한 화첩의 한 장면이다. 단발령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실경산수화에 사상적인 표현을 가미한 것을 이른바 진경산수화라 한다. 한국의 산천을 화제로 삼았다기 보다는 이런 실경을 다루면서 ..
'보물급 실경산수화'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재일교포 사업가 경포대와 총석정 등 강원도의 명승지를 그린 16세기 보물급 실경산수화 2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재일교포로 자수성가한 고 윤익성(1922~1996)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창업주의 유족이 16세기 중반에 제작한 와 2점을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19일 밝혔다.일본에서 구입하여 기증된 16세기 실경산수화 ‘총석정도’. 실경산수화의 전통이 정선(1676~1759) 이전부터 확립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이번에 기증된 와 는 현재 전해지는 강원도 명승지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특히 16세기 감상용 실경산수화 제작 양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현존작으로 가치가 높다. 두 작품은 16세기 중엽 관동 지방의 빼어난 풍경을 유람하고 난 후 감상을 그린 ..
빔프로젝트, 냉난방, 현대식화장실까지…경복궁 흥복전의 변신 “참신해보이기도 하고…좀 생경해보이기도 하고….” 지난 10일 3년3개월의 공사 끝에 사실상 복원을 마무리지은 경복궁 흥복전 안에서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가 개최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올 1월 기존의 궁·능 유적관련부서들을 통폐합해서 새롭게 출범한 궁능유적본부가 흥복전의 복원공사와 4대궁 40개릉의 중장기 발전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옛 모습 그대로의 복원을 금과옥조로 삼았던 기존의 관례였다면 이날처럼 말끔하게 복원된 궁궐 전각에서 기자회견을 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복원을 사실상 끝낸 경복궁 흥복전. 단청공사만 마무리 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공사를 끝내고 외부관람이 허용됐다. 흥복전은 지금 백골집(단청을 하지 않은 상태)의 형태이다.|우철훈 선임기자분명히 옛 궁궐, 그것도 조선의 법..
'병든 부모 위해 손가락 깨문' 효자의 지석, 북한 화가의 작품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 면모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힌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1608~1667)의 묘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됐다.국립중앙박물관은 최근 전주 유씨 춘호공파 후손인 유양석씨(92)로부터 전평군 유심의 ‘백자청화묘지’ 5점(1686년작)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박물관측은 이를 포함해서 탕평 정치를 대표하는 송인명(1689~1746년)의 문집인 과 20세기 북한 화가 선우영(1946-2009년)의 등 문화재 6건 19점을 5명의 소장가들로부터 기증받았다고 덧붙였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조선 중기의 인물인 유심의 묘지. “부모가 병들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냈고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전평군 유심의 유물인 ‘백자청..
해시계 별시계 통합 천문기구 만든 18세기 실학자 유금을 아십니까 중국을 통해 전래된 서양의 천문시계(아스트롤라베·이슬람에서 고안된 천문시계)를 조선식으로 해석한 이가 있다. 실학자 유금(1741~1788)이다. 역시 실학자인 유득공(1748~1807)의 숙부이자 당대 학술·예술·과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실학자이자 발명가다. 이 유금이라는 분이 1787년(정조 11년)에 만든 천문관측도구가 바로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이다. ‘혼개통헌의’는 천체를 관측하는 기구라는 뜻이다. 유금이 만든 혼개통헌의는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의기(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서 표현한 천문관측기구이다.정조시대 실학자 유금이 재작한 천문기구인 ‘혼개통헌의’. 해시계와 별시계를 하나의 원판형의기(천체의 운동을 관측하는 기구)에 통합해서 표현한 천문관측기구이다.|문화재청 제공..
'미인박명' 지광국사탑, 110년 역마살 끝내고 귀향한다 ‘미인박명’. 강원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 101호)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미인’이란 국내 부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뜻이고, ‘박명’은 그만큼 탑의 팔자가 기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1911년 원주에서 반출되어 서울 명동으로 옮겨졌을 때의 지광국사 탑. 이 탑은 오사카로 팔려갔다가 다시 돌아왔다지만 경복궁으로 이전됐다. 문화재청은 건축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회의 검토 결과 현재 해체·복원 작업중인 지광국사탑을 원래 있던 곳인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의 법천사지로 이전을 결정했다고 최근 밝혔다. 그러나 지광국사 탑과 탑비를 원래의 위치에 보호각을 세워 복원할지, 아니면 사지내 건립을 추진 중인 전시관 내부에 탑을 이전 전시하게 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 지광국사탑의 실제 이전 ..
사라진 신안 보물섬 유물 2만점 중 일부 도자기, 40년만에 현현했다 1975년 8월20일 전남 신안 중도 앞바다에서 조업중이던 어부 최평호씨(당시 35살)의 그물에서 심상치않은 물건이 걸렸다. 청자꽃병을 비롯한 중국제 청자와 백자였다. 최씨는 이 물건들을 그냥 마루밑에 보관해 두었다. 6개월 뒤 초등학교 교사인 최평호씨의 동생이 ‘마루밑 중국제 청·백자 이야기’를 듣고 가만 있지 않았다.40여년만에 회수된 신안선 유물들. 1980년대초 잠수부를 동원해서 건져올린 뒤 은닉해온 것들이다. |문화재청 제공"심상치 않은 물건 같은데 신고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동생은 곧바로 신안군청에 중국제 청백자의 인양 사실을 알렸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신안선의 존재는 이렇게 알려졌다. 감정에 들어간 문화재관리국(문화재청의 전신)은 이 중국제 청·백자가 중국 송~원나라 시대의 것임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