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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래자 思來者155

정조의 친여동생 청연군주가 입은 명주저고리 복원됐다 ‘정조의 여동생 청연군주를 아십니까.’ 정조(재위 1776~1800)는 비정한 아버지(영조)의 명에 따라 뒤주에 갇혀 비명횡사한 사도세자(1735~1762)와 동갑내기 부인인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아들이다. 그런 정조에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살, 네 살 터울의 여동생이 둘 있었으니 청연군주(1754~1821)와 청선군주(1756~1802)이다. 할아버지인 영조 임금도 42살이 되어 낳은 아들(사도세자)이 본 손자(정조)와 손녀(청연·청선군주)가 얼마나 귀여웠을까. 정조의 여동생이자 사도세자의 딸인 청연군주가 입은 명주저고리. 국가민속문화재 53호이다.|세종대박물관 소장은 “영조(1694~1776·재위 1724~1776)가 72살 때인 1765년(영조 41년) 4월 가뭄 끝에 내린 단.. 2020. 2. 4.
짝퉁? 창조적 모방?…고구려풍 베낀 신라귀족 귀고리 포항서 발견 단순한 짝퉁인가, 아니면 창조적 모방인가. 5세기 후반 신라에서는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금귀고리를 제작했고, 이 귀고리를 포항지역 귀족이 달았던 증거가 나왔다.포항융합기술산업지구 진입도로 구간을 조사중인 화랑문화재연구원은 최근 포항 흥해읍 대련리 유적에서 황금으로 만든 금제굵은고리귀고리(金製太環耳飾) 1쌍을 비롯하여 금제가는고리귀고리(金製細環耳飾) 2쌍, 은제팔찌 1쌍 등의 장신구류와 다수의 토기를 발굴했다고 밝혔다.포항 대련리에서 확인된 금제 귀고리. 고구려 기법을 모방한 신라산으로 추정된다.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확인된 7기의 무덤 중에서 6기는 모두 도굴되었다. 그러나 가장 규모가 크고. 귀고리 등이 확인된 4호 무덤은 무너진 천장 덮개돌이 부장 유물들을 덮고 있는 바람에 천만다행으로 도굴을 피했다.. 2020. 1. 28.
"1500년전 마을별 세금 할당량"…경산 소월리 출토 목간의 정체 ‘감말곡 논 7결(?), 둑 위 1결, 구미곡 3결, 둑 아래 40부, 하지시곡 논 2결, 구리곡 ○부, 곡문미진 상급의 밭(上田)….’ 지난해 12월 초 경산 소월리 유적의 구덩이에서 수수께끼와 같은 유물들이 나왔다. 3면을 사람 얼굴 모양으로 뚫은 토기 항아리와 함께 의도적으로 바닥을 제거한 시루가 보였다. 시루와 사람 모양 항아리를 맞춰보니 꼭 들어 맞았다. 관심의 초점이 된 유물들이 더 나왔다. 바로 5~6면에 알쏭달쏭한 글씨를 잔뜩 새겨놓은 목간과 싸리나무 다발과 자귀로 추정되는 목제유물이었다. 목간은 다발 및 자귀 아래에서 나란히 늘어선 형태로 발견됐다.1차 판독과 달리 2차판독에서 E면 판독이 많이 바뀌었다. ‘답중삼결(畓中三結·논 중 3결)’이 ‘답십삼결(畓十三結·논 13결)’로, 판독불가.. 2020. 1. 20.
한성-웅진-사비에 이어 또하나의 '익산백제'도 있다-3만점 유물 모은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익산도 또 하나의 백제다.’ 10세기 쯤 편찬된 은 “백제 무광왕(무왕·재위 600~641)이 지모밀지(익산 금마면)로 천도하여 사찰을 경영했는데, 그 때가 정관 13년(639년)이었다”고 기록했다. 익산 미륵사지에 건립되어 10일 개관하는 국립익산박물관. 백제관련 유물 3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국립익산박물관 제공물론 등 정사에는 천도 기록이 없지만 익산이 최소한 백제 말기에 별도(別都) 혹은 행정수도였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서동(무왕)과 선화공주의 사연을 담았고, 삼국시대 최대의 가람을 갖춘 미륵사, 주변의 익산토성과 제석사지, 또한 무왕 부부묘가 확실한 쌍릉 등 많은 백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지명 이름이 왕궁리(王宮里)라는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무엇보다 익산에서는 수많은 백제 유물들.. 2020.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