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자 思來者 (160) 썸네일형 리스트형 일제는 왜 서대문(돈의문)은 헐고 남대문(숭례문)은 살렸나 ‘난 경성 서대문이올시다.’ 1915년 3월4일 매일신보가 조선총독부 기관지 답지않은 기사를 싣는다. 돈의문(서대문)의 철거를 의인화해서 ‘영원히 사라질 돈의문(서대문)’을 안타까워했다. 기사는 “나는 1421년(세종 3년) 팔도장정 30만명의 손으로 탄생한 성문 8곳, 즉 8형제 중 둘째되는 돈의문이다”로 시작된다. “이름 덕분에 몇백년 먹어도 갓난아이처럼 ‘새문 새문’소리를 듣더니…여러분과 인연이 끝나 경매되어 팔린답니다…조국에 변란이 일어나면 무능한 나도 국가의 간성(干城)노릇을 해서 성밑에 몰려드는 적군의 탄환과 화살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지엄하게 한성의 서편을 지켰는데 다만 경매 몇푼에….” 돈의문 철거소식을 의인화해서 알린 매일신보 1915년 3월4일자. ‘나는 서대문이올시다’라는 제목으로 철거.. 관통도로에 일왕연호 '소화'까지…일제의 종묘 훼손 증거 나왔다 ‘소화(昭和) 8년 3월 개축’.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국가사당인 종묘(사적 제125호)의 외곽담장에는 국권침탈의 뼈아픈 역사가 새겨져 있다. 조선 임금과 왕후의 신위를 모신 국가사당에 일본 왕(히로히토·裕仁)의 연호인 ‘소화(昭和·1926~89)’ 글자를 새긴 것이 9개나 된다. 그런데 이 일본 왕의 연호인 ‘소화’ 명문이 일제가 1932년 종묘~창덕궁·창경궁 관통도로를 뚫은 뒤 훼손된 종묘담장을 개축하고 새긴 모욕의 상징이라는 추정이 나왔다.종묘 외곽담장에 새겨진 일왕 히로히토(재위 1926~1989년)연호. 소화(쇼와·昭和) 8년은 1933년에 해당된다. 일제가 창덕궁과 종묘 사이를 지나는 관통도로를 뚫은 뒤 훼손된 담장을 수리한 증거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궁능사업본부 종묘관리소 제문화재청 궁.. 내시가 조성한 정원, 과연 문화재의 가치가 있을까 ‘새롭게 밝혀진 내시의 별장, 문화재 가치가 있는가.’ 최근들어 조선조 철종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자 의친왕의 별궁으로 ‘200년 조선의 비밀정원’이라는 이유를 들어 명승(제35호)으로 지정된(1992년) 성락원(서울 성북동)의 문화재적 가치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 결과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이 1983년과 92년 “문화재적 가치가 없다”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하고 문화재로 지정한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김영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사편찬위원회를 통해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은 사료에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확인함으로써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는 애초부터 없었는데, 문화재관리국이 성락원 소유자의 근거없는 주장을 검증없이 받아들였다는 비.. 마한의 심장부에 웬 생뚱맞은 백제고분…담로제의 흔적? ‘마한의 심장부에 웬 생뚱맞은 백제지배층의 무덤이 나타난 것일까.’ 3~6세기 전반 영산강 유역의 독특한 문화가 ‘옹관 무덤’이다. 땅 위에 거대한 봉분을 쌓아올린 뒤 그 속에 여러 개의 옹관(독널)을 묻은 묘제를 일컫는다. 옹관은 이 지역의 토착세력인 마한의 문화권임을 상징하는 묘제이다. 그런데 다른 곳도 아닌 대형옹관의 핵심분포권인 반남고분군 인근에 옹관과는 어울리지 못한 고분이 버티고 있다. 나주 송제리고분 돌방에서 수습한 은제관식과 하단 고정 못. 6세기 전반 백제 중앙정부가 하사한 복식(옷과 장식)인 것으로 추정된다.|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전혀 어울리지못한 고분 영산강 지류인 금천과 만나는 전남 나주 세지면 송제리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 이른바 송제리 고분이다. 예부터 ‘동산’이니 ‘고려장’이.. 지독한 근시에도 책1만권 읽었다는 매천 황현의 문방구류가 문화재 된다 ①“바탕이 올곧으며 아름다운 게 덕을 지닌 군자의 빛과 같으니 오래도록 진실로 좋아하리라(貞固含章 君子之光 其壽允臧).”②“돌 위에는 샘솟는 벼루가 있으니 군자는 강한 덕으로 빛날 것이다.(石上有泉硯 君子以 剛德而潤)”③“문예의 밭 날로 갈면 추수 풍성하리니 즉묵(후)에 봉해진 네 공적 가상하구나.(藝圃日闢 秋有穫 余嘉乃積 封卽墨)”보물 제1494호 매천 황현 초상. 지독한 근시에 시달린 황현 선생의 안경은 이번에 등록문화재가 된다. 구한말~조선제국기 애국시인이자 역사가이며 경술국치 직후 순절한 매천 황현(1855~1910)은 에 벼루를 소재로 한 시(‘연명·硯銘’)를 여러편 지었다. 그것을 명(銘)이라 한다. ‘명’은 본래 ‘새기다’라는 뜻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물건에 대한 내력과 단상 혹은 물건을 .. 고구려 광개토대왕군과 맞서던 한성백제군의 군사기지, 충남 당진에서 발견 충남 당진 성산리 산성에서 4세기 후반~5세기 전반 한성백제군 군사기지의 막사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확인됐다. 지난 4월부터 산성을 정밀조사 중인 금강문화유산연구원은 “성 내부에서 총 6기의 주거지가 성벽과 가까이 밀집해 있었다”면서 “유구의 형태로 보아 군사들의 거주용 막사인 군막일 가능성이 짙다”고 최근 밝혔다. 한성백제군 부대 막사에서 춡토된 세발달린 그릇과 굽다리 접시, 계란모양 토기, 시루, 가락바퀴 등의 유물들. 취사를 비롯한 생활용품들이다. 백제병사들을 위한 군납용품이었을 것이다. |금강문화유산연구원 제공 길이 239m에 이르는 성벽은 해발 67m의 야상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다. 성벽은 야산의 자연경사면 위에 흙과 잡석을 켜켜이 쌓아 축조한 테뫼식(산 정상부를 둘러서 쌓은) 산성이다. 성벽의 .. 제2의 무령왕릉 출현하나…공주 송산리서 확인된 46기 고분의 실체 “‘중방(中方)’ 명 벽돌의 원 위치를 찾아라.” 충남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무령왕릉 및 6호분과 같은 성격의 벽돌무덤을 포함, 새로운 백제고분 41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확인됐다.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등재) 중 한 곳인 송산리 고분군의 중장기 학술조사 수립을 위한 첫 정밀현황조사 결과 무령왕릉 인근에서 ‘중방(中方)’ 명 벽돌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무령왕릉 남쪽 80m 지점의 지표면에서 ‘중방’ 명 벽돌을 수습했다”면서 “이 벽돌은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파괴벽돌무덤(17호분)의 추정위치와도 70m 정도 떨어져 있다”고 전했다. 무령왕릉 서벽 창문모양 장식에 사용된 ‘중방(中方)’명 벽돌(좌)과 이번 조사에서 수습한 ‘중.. '정선, 김홍도…' 화가적 시선으로 본 조선의 실경산수화 특별전 실경산수화는 실재하는 경치, 즉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를 폭넓게 칭하는 일반적인 표현. 고려시대 이녕의 와, 작자미상의 , 등이 있다. 조선중기 한강가 독서당에서 열린 계회장면을 그린 (보물 제 867호)와 곡운 김수증(1624~1701)이 강원도 화천의 승경지를 선정해서 사인화가(士人畵家) 조세걸(1636~?)에게 그리게 한 (1682년)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는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됐다. 겸재 정선의 . 1711년 금강산을 처음 여행하고 제작한 화첩의 한 장면이다. 단발령에서 멀리 금강산을 바라보는 여행자들의 모습을 그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실경산수화에 사상적인 표현을 가미한 것을 이른바 진경산수화라 한다. 한국의 산천을 화제로 삼았다기 보다는 이런 실경을 다루면서 .. 이전 1 ··· 5 6 7 8 9 10 11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