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자 思來者 (160) 썸네일형 리스트형 '반파'는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이다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의 숨은 주인공은 ‘반파’이다.”최연식 동국대 교수는 최근 한국목간학회가 주최하는 정기발표회에서 ‘영락 6년 고구려의 백제침공 배경과 역사적 의미’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최 교수는 논문에서 한국과 일본 학계가 해석을 두고 대립한 고구려 광개토왕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의 의미에 대한 독특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 문구는 지금까지도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와 백제 □□ 신라를 깨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로 해석됐다. 일본 학계는 이 대목을 두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했다.광개토대왕 비문에서 치열한 논쟁을 불렀던 신묘년(391년) 기록. ‘이왜이신묘년래도□파백잔□□신라이위신민’(而倭以.. 고종을 매섭게 꾸짖은 70대 의병대장, "대체 전하는 무슨 마음을 먹고 …' “폐하는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무슨 사람이기에 이따위 짓을 합니까.(陛下何爲而爲此)”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이 공포되자 황제를 매섭게 꾸짖는 상소문을 올린 이가 있었다. ‘절대 한일합방을 하면 안된다’(請勿合邦)는 상소였다. 상소문의 주인공은 구한말의 의병장인 척암 김도화 선생(1825~1912년)이다. 700자로 구성된 이 상소문은 고종과 고종의 뒤를 이른 순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돌리며 욕설에 가까운 비판의 칼날을 휘두른다.“500년 역사의 왕위와 3000리 강토는 선대의 왕으로부터 이어받았습니다. 국가의 통치대권은 폐하의 사유물이 아니며 한 치의 땅도, 한 사람의 백성도 폐하의 사유물이 아닙니다.”척암은 “그런데 임금인 당신은 나라를 주고받는 일을 어찌 농사 짓는 자가 토지에서 난 곡식을 .. 어이없이 보물에서 누락된 성주사 동탑, 85년만에 지위 찾았다 충남 보령 성주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성주사(사적 제307호)는 1400년이 넘은 유서깊은 절이다.백제 법왕(재위 599~600)때 창건되어 오합사로 일컬어지다가 847년(문성왕 9년) 신라 낭혜화상(무염·801~888)이 중창했다. 조선후기 폐사되어 건축물 대부분이 사라진 성주사에 하나 특이한 점이 있다. 탑이 많다는 것이다. 경내 북서쪽에 낭혜화상탑비가 버티고 있고, 남쪽부터 오층석탑과 삼층석탑 3기 등이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보물에서 누락되었던 충남 보령 성주사지 동 삼층석탑. 이번에 보물 제2021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 제공그런데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낭혜화상탑비(국보 제8호)와 오층석탑(보물 제19호)·중앙 삼층석탑(보물 제20호)·서 삼층석탑(보물 제47.. ‘양심의 가책’... 미해병장교가 전리품으로 챙겨간 문화재 65년만에 반환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겨울) 본부중대 병사들이 몸을 녹이려고 절 안팎 여기저기서 활활 불을 태우고 있었다…돌과 도끼, 삽으로 마구 빠개진 불경 목판더미가 타고 있지 않은가…나는 부연대장에게 달려가 ‘겨레의 문화재가 타고 있으니 즉시 불을 끄고 경판을 회수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했다.” 고 리영희 교수가 1996년 법보신문에 기고한 컬럼이다. 한국전쟁 당시 국군 보병 제11사단 9연대 청년장교로 참전했던 리영희 교수가 설악산 신흥사에 주둔한 부대의 병사들이 문화재인 불경판들을 불에 태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쟁이 끝난 1954년 10월 강원 속초에 근무하던 미 해병대 소속 리차드 락웰 중위가 부대원들과 수색정찰임무를 수행하다가 신흥사에 들렀다. 신흥사는 전쟁 당시 폭격을 맞아 폐허가 되어 .. "미륵사지 탑 복원, 절차가 잘못됐다고?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싶었을 뿐" ‘20년 이상 진행된 문화유산의 해체·복원이었던만큼 일반적인 공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가 부적정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21일 “1998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원방법이 자주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었고 설계를 바꾸는 등의 절차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20년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 6층인지 9층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해체된 부재만 3000개에 달해 복원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됐고, 최근에는 가설덧집까지 완전히 해체됐다. 오는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문화재청 제공그러나 문화재청은 “제대로 해체·복원하기가 까다로워 20년 장기 계획을 세운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달리 봐.. '안사람의병단' 이끈 여성독립투사 윤희순의 의병가, 문화재 된다 “아무리 외놈(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외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구한말 시아버지(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의병장 윤희순 선생(1860~1935)이 지은 의병가 ‘안사람 의병가’ 가사의 일부이다.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이 짓고 윤희순 선생이 필사해서 보급했다는 ‘안사람 의병가 노래’도 남아 있다. “…내집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거니 의복버선 손질하여 만져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안윽하게 만져주세…”라는 가사다. 윤희순의 중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주제의 격문. ‘조선의 안사람들도 의병.. "쌍둥이 불상이었다", CT촬영으로 100년만에 물증 잡은 '오쿠라' 유물의 반출범죄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 실업가 중에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1837~1928)라는 인물이 있다. 1873년 일본에서 다이세이(大成)라는 회사를 차린 오쿠라는 청일전쟁 때 무기와 군수물자를 팔아 거부가 된 인물이다. 그래서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오쿠라는 구한말 부산으로 진출하여 고리대금업과 무역업을 겸하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건칠보살좌상’. 1915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에게 사들인 유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과 짝을 이룬 보살좌상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그런 오쿠라는 구한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백주대낮까지도 인부들을 끌고 다니며 조선의 고분을 도굴해서 1000여 점이 넘는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쿠라가.. 독일은 왜 불법반출 문화재를 돌려줄까 ‘아니 뭐 이런 유물 가지고….’ 오는 3월19일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이하 로텐바움 박물관·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재 반환식’ 소식을 접하면 우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텐바움 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까지 나서 반환결정을 내린 유물이 ‘고작’ 조선시대 문인석 1쌍(2기)이기 때문이다.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이 소장중인 조선시대 문인석. 1983년 독일인이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서 구입한 뒤 불법반출한 것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문인석은 고려·조선시기 능묘 앞에 세우던 문관 모습의 석인상이다. 유몽인(1559~1623)의 은 “조상의 묘 앞에 석인상을 세우는 이유는 공양..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