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래자 思來者 (156) 썸네일형 리스트형 "미륵사지 탑 복원, 절차가 잘못됐다고? 옛 모습대로 복원하고 싶었을 뿐" ‘20년 이상 진행된 문화유산의 해체·복원이었던만큼 일반적인 공사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다.’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가 부적정했다는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대해 문화재청은 21일 “1998년부터 장기프로젝트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복원방법이 자주 바뀌는 등 일관성이 없었고 설계를 바꾸는 등의 절차에도 다소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20년만에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서탑). 6층인지 9층인지 그 원형을 알 수 없고, 해체된 부재만 3000개에 달해 복원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 2017년 공사가 마무리됐고, 최근에는 가설덧집까지 완전히 해체됐다. 오는 23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문화재청 제공그러나 문화재청은 “제대로 해체·복원하기가 까다로워 20년 장기 계획을 세운 미륵사지 석탑의 경우 달리 봐.. '안사람의병단' 이끈 여성독립투사 윤희순의 의병가, 문화재 된다 “아무리 외놈(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쳐지면 외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 사랑 모를소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없이 소용있냐. 우리도 의병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구한말 시아버지(유홍석 의병장)을 따라 독립운동에 나선 여성의병장 윤희순 선생(1860~1935)이 지은 의병가 ‘안사람 의병가’ 가사의 일부이다. 시아버지인 유홍석 의병장이 짓고 윤희순 선생이 필사해서 보급했다는 ‘안사람 의병가 노래’도 남아 있다. “…내집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보세.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찾기 운동이요, 왜놈들을 잡는거니 의복버선 손질하여 만져주세.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안윽하게 만져주세…”라는 가사다. 윤희순의 중 ‘오랑캐들아 경고한다’는 주제의 격문. ‘조선의 안사람들도 의병.. "쌍둥이 불상이었다", CT촬영으로 100년만에 물증 잡은 '오쿠라' 유물의 반출범죄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 실업가 중에 오쿠라 기하치로(大倉喜八郞·1837~1928)라는 인물이 있다. 1873년 일본에서 다이세이(大成)라는 회사를 차린 오쿠라는 청일전쟁 때 무기와 군수물자를 팔아 거부가 된 인물이다. 그래서 ‘죽음의 상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랬던 오쿠라는 구한말 부산으로 진출하여 고리대금업과 무역업을 겸하기 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건칠보살좌상’. 1915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상에게 사들인 유물이다. 그런데 이 유물과 짝을 이룬 보살좌상은 일본으로 반출됐다.|국립중앙박물관 소장그런 오쿠라는 구한 말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백주대낮까지도 인부들을 끌고 다니며 조선의 고분을 도굴해서 1000여 점이 넘는 문화재를 일본으로 빼돌린 것으로 악명이 높다. 오쿠라가.. 독일은 왜 불법반출 문화재를 돌려줄까 ‘아니 뭐 이런 유물 가지고….’ 오는 3월19일 독일 로텐바움 세계문화예술 박물관(이하 로텐바움 박물관·옛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국 문화재 반환식’ 소식을 접하면 우선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텐바움 박물관과 함부르크 주정부는 물론이고 독일 연방정부까지 나서 반환결정을 내린 유물이 ‘고작’ 조선시대 문인석 1쌍(2기)이기 때문이다.독일 함부르크 로텐바움 박물관이 소장중인 조선시대 문인석. 1983년 독일인이 서울 인사동 골동상에서 구입한 뒤 불법반출한 것임이 뒤늦게 드러났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제공 문인석은 고려·조선시기 능묘 앞에 세우던 문관 모습의 석인상이다. 유몽인(1559~1623)의 은 “조상의 묘 앞에 석인상을 세우는 이유는 공양.. '993년' 고려청자의 기준점이 된 '순화명' 항아리, 국보로 거듭난다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定窯·송나라 때 정주에서 만든 자기)의 백자, 절강의 칠기, 고려 비색(청자). 오의 종이, 낙양의 꽃은 천하제일이다.”(洛陽花建州茶 高麗秘色此天下第一). 남송(1127~1279)의 인물인 태평노인은 에서 고려청자의 신비로운 빛깔(비색)을 당대 으뜸으로 꼽았다. 1123년(인종 원년) 200여년의 사절단을 이끌고 고려를 방문한 서긍(1091~1153) 역시 “도기의 빛깔이 푸른 것을 고려인은 비색(翡色)이라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고 극찬했다.‘순화4년명’ 항아리.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선대 임금들의 제사를 위해 건립한 태묘(太廟)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된 왕실 제기(祭器)였다. |이화여대 박물관 소장이렇듯 고려청자를 포.. 황현의 절명시와 한용운의 추모시, 105년만에 공개되는 사연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발의 나이에 이르도록(亂離滾到白頭年) 몇번이나 목숨을 끊으려다가 이루지 못했네.(幾合捐生却未然) 이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으니(今日眞成無可奈) 바람 앞 가물거리는 촛불 푸른 하늘 비추누나.(輝輝風燭照蒼天)… 새 짐승 슬피울고 바다와 산도 시름거리니((鳥獸哀鳴海岳嚬) 무궁화 세상은 다 망하고 말았네.(槿花世界已沈淪) 가을 등불 아래 책덮고 역사를 돌이켜보니(秋燈掩卷懷千古) 글 아는 사람 구실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매천 황현 선생의 ‘절명시’. 죽음으로 경술국치에 항거한 매천 선생의 칠언절구 한시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매천 황현 선생 후손 소장 우국지사이자 시인인 매천 황현(1855~1910) 선생이 1910년 경술국치를 맞아 식음을 전폐하다가 자결하면서 남.. 봉황? 천계? 아니면 그냥 새? 입점리 금동장식의 정체 “어! 이게 뭐야.” 1986년 2월2일 오전 10시쯤 전북 익산 웅포면 입점리에 사는 고교 1년생 임모군이 마을 뒷산에서 칡뿌리를 캐다가 무덤 1기를 발견했다. 호기심에 무덤 안으로 들어간 임군은 금동제 관장식 등 깜짝 놀랄만한 유물을 수습했다. 임군은 4일후인 6일 익산시청 공보실에 신고했다. 이른바 입점리 고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바로 이 고교생의 신고 덕분이었다.입점리에서 출토된 금동제 삼각형 장식에 표현된 이른바 봉황문 도안. 벼슬이 더듬이처럼 표현됐고 양쪽 날개 깃털은 4가닥, 꼬리는 3가닥, 2개의 다리, 3개의 발톱이 새겨져 있다. 학계일각에서는 상상의 새를 의미하는 ‘3족 봉황문’이라 했지만 ‘2족’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영범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 제공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최.. '적국의 수괴, '적의 장교'를 도륙하겠다고 선언한 이봉창 윤봉길 의사 선서문 “나는 적성(赤誠·참된 정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서울의 제과점 점원, 만주의 운전견습생 및 철도원,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직공, 잡역부, 날품팔이 등을 가리지 않고 일본인 행세를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가 있었다. 바로 이봉창(1900~1932년) 의사였다.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적국의 수괴(일왕 히로히토)를 도륙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하오리(일본식 남자옷)에 게다짝까지 질질 끌고다니는 이봉창이 상하이 임정 건물을 출입하자 사람들은 “백범 선생은 왜놈 행색의 저런 자를 그냥 두느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백범 김구 선생은 기노시타 쇼조(木下昌.. 이전 1 ··· 8 9 10 11 12 13 14 ··· 2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