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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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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탕카문과 네페르티티 왕비 1922년 11월 고대 이집트의 ‘소년왕’인 투탕카문(Tutankhamun·투탕카멘) 무덤이 발굴되자 심상찮은 소문이 돌았다. 관 뚜껑에 ‘파라오(왕)의 잠을 깨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10살 무렵(기원전 1361년) 즉위한 뒤 19살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요절한 소년왕의 ‘저주’라는 것이었다. 5개월 후인 1923년 4월 무덤 발굴을 후원한 영국의 카나본 경이 공교롭게도 면도 중에 생긴 상처 부위를 모기에 물린 뒤 폐혈증으로 사망했다. 투탕카문 미라의 얼굴에 난 상처와 똑같은 부위였으니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 박물관에 소장된 네페르티티 흉상. 독일 고고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가 1914년 이집트 텔 엘 아마르나에서 발굴한 뒤 독일로 ..
약사불 앞에 선 아픈 정치인들 “약사(藥師)는 의사의 이름을 빌렸다. 악귀를 물리치고, 온갖 재앙에서 보호받고, 극락왕생을 원하는 자는 약사여래의 이름을 부르면 구제받는다.”() 약사여래는 ‘약사’라는 이름만 불러도 온갖 질병과 모든 재난을 없앤다는 부처님이다. 학문적 연구에 치중했던 초기 불교가 대중과의 괴리감 탓에 인기를 잃자 ‘기복신앙’을 받아들인 것이다. 약사신앙으로 병을 고쳤다는 신묘한 기록이 등에 보인다. “선덕여왕의 병이 깊어지자 밀본법사를 불렀다. 법사가 여왕의 침실 밖에서 을 읽은 뒤 지팡이를 던지자 늙은 여우 한 마리를 찔러 뜰 아래로 내던지니 여왕의 병이 나았다.”( ‘신주·밀본최사’조). 지난 13일 서울 능인선원에서 모습을 드러낸 세계최대규모의 약사대불.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치료한다는 치유의 부처로 알려져 ..
신라왕릉, 도굴에서 살아남은 비결 “청일전쟁 이후 일확천금을 꿈꾸고 온 일본인들이…무덤 속에 금사발이 묻혀있다던가 혹은 금닭이 운다던가 하는 전설을 퍼뜨리며….”( ‘고분발굴만담’, 1932년) 일제강점기에 경주의 고분을 발굴했던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는 일본인들에 의해 자행된 무자비한 도굴행각을 개탄하는 글을 발표했다. 일본인조차 낙랑고분과 가야고분, 고려고분 등이 무차별 싹쓸이 도굴로 난도질당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이렇게 일본인마저 한숨 쉰 이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고분들이 있었다. 4세기 후반~6세기 전반 사이에 왕경(경주) 안에 조성된 왕릉급 무덤들이었다. 적석목곽분이라는 묘제 덕분이었다. 돌로만 쌓은 고구려·백제의 적석총과 달리 이 시기 신라 무덤은 관을 묻고 그 위에 자갈돌과 흙을 차례차례 두텁게 쌓은 형태였다...
'난신적자'에겐 공소시효가 없다 기원전 621년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은 천토(踐土)라는 곳에서 천자(주나라 양왕)을 위해 회맹식을 열었다. 제후 가운데 최고 실력자인 문공이 다른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자(양왕)를 위해 베푼 충성맹세의 장이었다. 역사는 이 사건을 ‘천토지맹(賤土之盟)’이라 일컫는다. 이로써 진 문공은 춘추시대 제후국을 대표한 첫번째 ‘춘추5패’가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공자가 쓴 역사책인 가 이 역사적인 팩트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천자가 하양(河陽)이라는 곳으로 사냥을 나갔다”고만 기록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명백한 왜곡이었다. 공자는 과연 왜 그랬을까. 1905년 을사늑약 장면을 그린 당대의 풍자그림. 왜병의 총칼 앞에서 서명하는 을사오적과 고종 황제,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백제와 신라 철천지 원수가 된 사연 1993년 12월12일,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엄청난 유물이 나왔다. 백제예술의 정수 금동대향로였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신라유물이 단 한점도 출토되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노릇이었다. 이 유적은 고구려는 물론 중국·서역의 문물이 엿보이는 국제문화교류의 창구였는데도 유독 인접국인 신라의 유물만 없는 것이다. 왜일까. 알다시피 이 능산리 절터는 백제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재위 523~554년)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절이었다. 역사적으로 백제와 신라는 총 66회(백제멸망 이후 부흥군과 싸운 8회의 전쟁 포함)를 싸우며 패권을 다퉜지만 밀월관계를 유지한 적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국익에 따라 협력과 배신을 밥 먹듯 하는 게 외교가 아닌가. 백제·신라는 고구려 남하에 위기감을 느낀 나머지 삼년산..
누가 '몰카'의 원조인가 11세기 영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가 가혹한 세금을 매기자 그의 아내 고다이버가 “제발 세금 좀 낮춰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영주는 실현 불가능한 조건 하나를 달았다. ‘당신이 벌거벗고 성안을 한바퀴 돌면 모를까.’ 하지만 방년 16살이었던 고다이버는 실행에 옮겼다. 다만 주민들에게 ‘내가 말을 타고 알몸으로 지날 동안 창문을 닫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세금 문제가 걸려있었으니 주민들 역시 흔쾌히 동의했다, 하지만 톰이라는 양복재단사가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견디지 못했다. 창문 틈새로 몰래 여인의 알몸 행진을 감상했다. 청년은 하늘의 벌을 받아 눈이 멀고 말았다. 관음증을 뜻하는 ‘피핑 톰(Peeping Tom)’이라는 여기서 말이 나왔다. 못말리는 인간의 관음 성향을 일러주는 ..
'빠라빠라빰' 수사반장의 추억 1989년 10월12일 방영된 TV드라마 의 마지막회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박반장(최불암 분)이 카메라를 응시하며 남긴 명대사다. “빌딩이 높아지면 그림자도 길어집니다.”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잉태한 빈부격차의 갈등이 흉악한 강력범죄로 체현되던 사회상을 풍자한 말이었다. 1971년 3월6일 첫 방영된 이 880회(총 18년7개월)의 대장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사실 자발적인 출발도 아니었다. “나쁜 놈들은 반드시 죗값을 받는 드라마 하나 만들라”는 고위층의 지시로 제작한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이다. 1971년 첫 방영 된 의 포스터. 범죄의 생태와 인간본성을 추적하는 흥미와 긴박의 수사실화극이라 했다. 최불암 김호정 조경환 김상순 등 4형사가 보인다. 순사(일제 경찰)의 이미지 때문인지 초반 인기는 형편없었다..
우사인 볼트의 라이벌은 '낙타' 우사인 볼트(자메이카·29)는 이름 그대로 ‘번개’라 할 수 있다. 번쩍하는 사이에 100m(9초58)와 200m(19초19)를 한달음에 달려버린다. 196㎝, 95㎏의 탄탄한 몸으로 무장, 다른 선수들이 44걸음에 내달리는 100m를 41걸음으로 끝내 버린다. 최대 보폭은 243㎝나 되며 평균시속은 37.6㎞에 이른다. 60m부터 시작되는 가속구간의 순간최고속도는 시속 45㎞에 달한다. 영국 브루넬대의 크레이그 샤프 교수는 “볼트가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짧은 접지시간을 더 강하게 지면을 차버림으로써 가속을 얻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분석했다. 그제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 결승에서는 ‘바람보다 빠르다’는 저스틴 게이틀린(미국·33)을 제치고 9초79로 우승을 차지했다. 어찌 바람이 번개를 이길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