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

(166)
‘이란판 단군신화’ 속 페르시아 왕자·신라 공주의 ‘사랑’과 ‘결혼’ 벌써 13년이 훌쩍 흘렀네요. 2008년 초에 이란을 답사하고 있었는데 테헤란에서 이주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란 젊은이들이 답사단 멤버인 한국 여성들을 보고 ‘양곰이 양곰이’하고 몰려들었던 겁니다. ‘양곰이가 누구야’ 했더니 글쎄, 드라마 대장금의 ‘장금이(Janggumi)’의 이란식 발음이었습니다. ■이란과 한국의 공통적인 역사 2006~2007년 사이 이란 국영 채널 2에서 방영된 ‘대장금’이 평균 시청률 85~90%에 달할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는데요. ‘대장금’ 외에도 ‘주몽’과 ‘동이’도 60%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할만큼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는데요. 왜 그렇게 한국의 사극이 이란에서 인기냐고 물었더니 그러더라구요. 한국 사극의 서술이 이란 역사와 비슷하다는 겁니다. 인류이동..
신미양요 때 빼앗긴 ‘수자기’…“반환 불가능한 미군의 전리품” 임진왜란 등에서 벌어진 전투를 그린 그림을 보면 예사롭지 않은 깃발이 보인다. ‘부산진순절도’(보물 391호)와 ‘동래부순절도’(보물 392호), ‘평양성탈환도’ 등을 보라. 성루에 큼지막한 깃발이 걸려있다. 그 깃발에는 ‘지휘관’을 뜻하는 ‘수(帥)’자가 대문짝만하게 쓰여있다. 그래서 이 깃발을 ‘수자기’라 한다. 그렇지만 ‘수자기’의 실물은 강화역사박물관에 딱 한 점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깃발의 소유권은 미국이 갖고 있다. ■미군의 전리품이 된 장군 깃발 1871년(고종 8년) 벌어진 신미양요 때 어재연(1823~1871)의 장군기였지만 미군이 빼앗아 갔다.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것을 2007년 10년 장기임대로 빌려왔다. 2017년 임대기간이 끝났지만 2년 단..
“이것이 조선 최초의 패션리더·키스신”…‘여성해방’ 그린 혜원 신윤복 조선시대 여인을 그린 그림은 고작 남성들의 눈요깃거리였습니다. 원래는 유교의 도덕을 선양하기 위한 그림이었고, 당나라 고종의 후비인 양귀비(719~756), 요임금의 두 딸인 아황·어영 등을 상상의 모델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여인 그림을 그린 이도 남성이요, 그것을 감상한 이도 남성이었으니 아무리 유교의 교훈용이었다지만 한낱 남성들의 눈요깃거리로도 쓰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밤잠을 설치기 십상… 단적인 예로 풍운아 허균(1569~1618)은 화가 이징(1581~?)이 그려준 ‘아이를 씻기는 두 여성’ 그림을 보고 다음과 같이 촌평합니다. “풍성한 살결이며, 아양부리는 웃음이 그 요염함을 한껏 발산하여~아아! 아리따운 자태가 너무도 사실적이어서…오래 펴놓으면 밤잠을 설칠까(공부를 설칠까) 두렵다.”() 1..
추사 김정희는 왜 '요사스런 자식'이란 쌍욕을 들었을까 요즘 다른 이들을 무자비하게 비판함으로써 관심을 끄는, 이른바 ‘관종’들이 출몰하고 있더군요. 그나마 품위있는(?) 단어를 쓴다면 ‘독설가’ 정도는 되겠는데요. 하지만 남을 매섭게 비판할 자격을 갖출만큼 독보적인 학식과 재능을 갖추고 있는 분이라면 몰라도 단지 ‘관종’ 수준의 인간들이 짓껄이는 ‘디스’ 쯤이야 그냥 무시해버리는게 낫겠죠. ■‘요사스런 자식’ 하지만 만약 추사 김정희(1786~1856)와 같은 분에게 인정사정 없는 독설을 들었다면 어떨까요. 그 분은 글씨 뿐 아니라 그림, 시와 문장, 그리고 고증학과 금석학, 다도(茶道)와 불교학 등 섭렵하지 않은 분야가 없는 천재가 아닙니까.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 분만의 장기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감상과 평론’ 이었습니다. 그런 분한테 ..
발굴자도 울었던 동래성 전투현장…1592년 4월15일 무슨 일이? 햇수로 35년간 기자생활을 해온 저의 뇌리에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기사가 있습니다. 400여년전 임진왜란 때 동래읍성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상을 기사로 작성할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2005년 4월 15일 부산 지하철 3호선 수안동 전철역사 예정지를 지나던 당시 경남문화재연구원 정의도 학예실장(현 한국문물연구원장)이 급히 차를 세웠습니다. 동래읍성과 불과 50m 떨어진 곳이었기에 전문가의 입회조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선 겁니다. 조사결과 과연 수상한 유구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발견된 유구의 정체는 당시 발굴실무를 담당한 안성현 경남문화재연구원 조사팀장(현 중부고고학연구소 근무)는 “처음엔 이 유구가 해자(성을 보호하려고 조성한 도랑 혹은 연못)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
이것이 1400년전 신라인의 ‘지문’, 1800년전 백제인의 ‘족적’이다. 범죄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사요원들이 가장 먼저 챙기는 것이 있습니다. 지문과 족적입니다. 지문은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끼리도 다르다고 하며, 같은 지문을 가질 확률이 640억분의 1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은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는 서명은 사람의 지문”이라고 했답니다. 신발 발자국인 족적 또한 신원을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활용됩니다. 신발의 크기와 보폭으로 키와 연령대를 가늠하고 신발의 종류와 찍힌 족적의 방향, 걸음걸이 등을 파악해서 용의자를 특정할 수 있습니다. 아니 역사 고고학 이야기 하면서 왜 뜬금없이 지문과 족적을 들먹이냐구요 ■남근처럼 보였던 흙인형이… 이유가 있습니다. 1800년 전과, 1300~1400년 전의 지문과 족적이 실제로 고고학 발굴로 확인된 이야..
'전하, 바다귀신 소개합니다'…임진왜란 참전한 '흑귀노' 용병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전시회가 개최되는 경우가 많이 생겼는데요.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에서는 27일부터 6월27일까지 ‘효공과 하멜 이야기’ 기획전시를 연다고 합니다. 전시는 ‘북벌 의지를 다졌던 효종과 조선에 억류된 네덜란드인 하멜이 무기개량 등에 끼친 영향을 살펴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다고 합니다. 덕분이겠지만 조선 땅에 표류한 외국인 중 가장 유명한 이가 네덜란드인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이라는 걸 부인할 수 없습니다. ■네덜란드인끼리 목놓아 울었다 하지만 하멜 말고도 상당수 외국인이 낯선 땅 조선에 표착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남겼습니다. 1653년(효종 4) 8월6일자 을 볼까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와있습니다. “예전에 조선에 온 박연이 금방 표류한 자들(하멜 일행)을 만나보..
책 1억번 읽은 '조선의 둔재'…세종도 울고 갈 '독서왕'이 됐다 최근 충북 증평군에서 색다른 특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독서왕김득신문학관’이 준비한 ‘느리지만 끝내 이루었던 길 독서왕 김득신’ 특별전인데요. 김득신의 유물인 과 이 충북도지정문화재가 된 것을 기념해서 7월11일까지 열립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김득신은 ‘야묘도추’ 등을 그린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이 아닙니다. 그 분과 동명이인이자 조선 중기의 시인인 백곡 김득신(1604~1684)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백곡 김득신은 천하의 책벌레로 알려진 세종대왕(재위 1418~1450)도 울고 갈 지독한 독서왕이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더욱이 김득신은 어려서부터 둔재로 소문났던 사람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세종을 능가하는’ 독서왕이 됐을까요. ■세종의 ‘자뻑’…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