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의 역사 (341) 썸네일형 리스트형 ‘춤바람’에 빠진 올림픽 선수단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lkh@kyunghyang.com “그들(한국선수단)은~ 연습이 없을 땐 ‘딴스(댄스)’를 하고~ 모사(毛絲)를 사러 저잣거리로 나간다. 그들이 조용할 땐 밥을 먹을 때뿐….” 런던올림픽이 한창이던 1948년 8월13일 UP조선통신발로 해괴한 기사가 타전된다. 한국선수들이 영국 소녀들과 댄스를 즐기는 등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이었다. 선수단은 “합심(단합)이 없으니 죽일 놈, 살릴 놈 소리를 듣는 것”(경향신문 1948년 8월20일자)이라는 욕을 먹었다. “집 안에서 새는 박아지, 들에서도 샌다는 격언도 있거니와 바로 우리 선수단을 두고 말한 것 같기도 하다.”(경향신문) 대체 무슨 일인가. 사람들은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첫 출전한 선수단에 거국적 성원을 보냈다. 올림픽.. 정전협정과 ‘할아버지 강’ 이기환 문화·체육에디터 lkh@kyunghyang.com 강화도 최북단. 강 건너 북한 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지금은 ‘평화전망대’이지만, 이 야트막한 봉우리의 원래 이름은 제적봉(制赤峰)이다. ‘빨갱이(赤)를 제압(制)한다’는 뜻이니, 얼마나 증오로 가득 찬 이름인가. 하기야 저 강은 1600여년 전(396년)에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4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략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는 “고구려군이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이 둘러싼(四面초絶 海水環繞) 관미성(오두산성)을 20일 동안이나 공격해 함락시켰다”고 기록했다. 이 수역은 예로부터 조강(祖江), 즉 ‘할아버지 강’이란 이름을 얻고 있다.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을 품에 안고 망망대해로 빠져나가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이 금단의.. 정전협정 속에 흐르는 평화의 강 강화도 최북단. 강 건너 북한마을이 손에 잡힐 듯하다. 지금은 ‘평화전망대’이지만, 이 야트막한 봉우리의 원래 이름이 제적봉(制赤峰)이다. ‘빨갱이(赤)를 제압(制)한다’는 뜻이니, 얼마나 증오에 가득찬 이름인가. 하기야 저 강은 1600여 년 전(396년)에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4만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침략했던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는 “고구려군이 사면이 가파르고 바닷물이 둘러싼(四面초絶 海水環繞) 관미성(오두산성)을 20일 동안이나 공격한 뒤 함락시켰다”고 기록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추억이다. ■정전협정 제1조 제5항 하지만 이곳은 평화의 상징일 수 있다. 당장 제적봉이라는 살벌한 이름은 지금 ‘평화전망대’라는 이름을 얻지 않았는가. 사실 저곳은 원래부터 전쟁과 반목, 증오의 이름으로 일컬.. 삼족오, 조선의 넋이 된 까닭은 조선 전기의 문신 가운데 이곤(1462~1524년)이라는 인물이 있다. 중종은 반정에 참여한 이곤을 연성군에 봉했다. 그의 무덤은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자리잡고 있다. 묘비는 그의 사후 35년 뒤인 1559년 손자인 이숙이 조성했다. 그런데 묘비를 보면 아주 재미있는 문양을 발견할 수 있다. 비석의 머리(비두)에 새겨진 ‘삼족오(三足烏)’의 문양이다. 비두는 구름 문양과 수평선의 파도문양에 바다가 보이는 일출광경을 그렸다. 해의 안에는 바로 그 삼족오가 요즘 말로 아주 ‘깔쌈’하게 새겨져 있다. 조선의 사대부 연성군 이곤의 묘비와 비두에 새겨진 삼족오. 구름문양과 수평선의 파도문양에 장엄한 일출광경을 새겼다. /손환일 박사 제공 ■태양 10개가 한꺼번에 뜨다 대체 무슨 일인가. ‘고구려의 기상과 정신을 표.. '왕수석' 다산의 근무지 무단이탈기 1797년 단옷날을 앞둔 초여름 날이었다. 36살의 다산 정약용이 훌쩍 도성을 빠져나갔다. 당시 승정원 좌부승지로 일했던 다산으로서는 명백한 근무지 이탈이었다. 다산은 에 그 전말을 전했다. “석류가 처음 꽃을 피우고, 보슬비가 깔끔하게 개자 불현듯 초천(苕川)에서 고기잡이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천진암기’) 초천은 다산의 생가(경기 남양주 조안면 능내리) 앞을 흐르는 실개천이다. 다산은 어릴 적 형제들과 뛰놀던 고향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일탈을 감행한 다산은 고향에서 형제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회포를 푼 사형제는 다음 날 강을 가로질러 투망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사형제의 ‘추억여행’ “크고 작은 물고기가 모두 50여 마리였다. 작은 배가 감당을 못했다. (잡은 물고기가 .. 임금도 뿌리칠 수 없었던 '쐬주 한 잔'의 유혹 “예로부터 술 때문에 몸을 망치는 자가 많습니다. 신이 벼슬에 오를 때는 소주를 보지 못했는데 지금은 집집마다 있습니다. 게다가 소주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가 흔합니다. 금주령을 내려야 합니다.” 세종 15년(1433)이었다. 이조판서 허조가 소주의 페해를 조목조목 논한다. 하지만 세종은 난색을 표한다. “엄금 한다고 무슨 소용이겠느냐. 막지 못할 것이다.(雖堅禁 不可之也)” 이조판서가 “추상같은 금주령을 내리면 근절시킬 수 있다”고 재차 고했다. 그러자 세종이 마지못해 한마디 덧붙인다. “그러냐. 술을 금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나 정 그리해야 한다면 주고(酒誥·술을 경계하는 글)를 지어 신하들에게 내려주지.” 역시 성군이시다. ‘쐬주 한 잔의 유혹’을 어느 누가 막는다는 말이냐. 600년 가까이 지난 .. 작은 공(탁구공)이 큰 공(지구)를 뒤흔들었다. “깨어라(起來)! 노예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여!(不願做奴隸的人們) 우리의 피와 살로 새로운 만리장성을 건설하자(把我們的血肉 築成我們新的長城)~” ‘의용군행진곡’이다. 필자가 탁구담당 기자를 했을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중국 국가이다. 국제대회 결승전이 열리는 마지막 날이면 중국의 오성홍기가 뻔질나게 오르내린다. 그에 맞춰 의용군행진곡이 쉴사이없이 연주된다. 중국탁구가 7개 전종목(남녀단체, 남녀단식, 남녀복식, 혼합복식)을 싹쓸이하면 7번이나 반복되는 세리머니이다. 지금도 나도 모르게 경쾌하고도 장중한 전주와 함께 씩씩한 목소리로 부르는 행진곡을 흥얼거릴 때가 많다. 하기야 중국의 등록선수가 최소 5000만에 이른다니 놀랄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선수만 해도 남한인구(5000만)에 육박한다니 말.. 삼국시대 ‘요지경’ 부부열전 “훨훨 나는 꾀꼬리/암수 서로 정답구나/외로운 이 내 몸은/누구랑 돌아갈까.(翩翩黃鳥 雌雄相依 念我之獨 誰其與歸)”( ‘고구려본기·유리왕조’) 이 ‘황조가’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사연을 상기해보자. 기원전 17년, 고구려 유리왕은 두 여인을 처로 삼았다. 한 사람은 고구려 여인인 화희였고, 다른 여인은 한나라 출신 치희였다. 임금의 사랑을 받으려는 두 여인의 투기는 지독했다. 언젠가 유리왕이 일주일간 사냥하러 궁을 비웠다. 그때 사단이 일어났다. 두 여인이 심하게 다툰 것이다. 고구려 여인 화희가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 “한나라 출신의 천첩인 니가 그렇게 무례할 수 있느냐?” 모욕감을 느낀 치희는 그 길로 친정(한나라)으로 돌아갔다. 뒤늦게 급보를 들은 유리왕이 말을 채찍질하여 달려갔다. 그.. 이전 1 ··· 36 37 38 39 40 41 42 43 다음